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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부정맥 치료 세계 권위자 김영훈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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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2


김영훈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는 심방세동 전극도자절제술을 도입하는 등 국내 부정맥 의료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글로벌 학계에서도 명망이 높다.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1981년 고려대 의과대학 본과 3학년 재학생 김영훈은 연이어 놀라운 경험을 했다. 실신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온 남녀 부정맥 환자가 각각 한 번의 주사 치료와 전기충격기 치료로 멀쩡하게 살아나는 모습을 본 것이다.

“두 분의 부정맥 환자가 제 가슴을 뛰게 해 부정맥 연구와 치료에 목숨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김영훈 학생은 이때의 다짐대로 부정맥을 누구보다 잘 보는 의사가 되었다. 한국 부정맥 의료를 이끌어온 김영훈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 이야기다. 김 교수는 1993년 조교수가 된 후 최근까지 고려대 안암병원 부정맥 치료팀을 이끌며 1만5000차례의 부정맥 수술을 했다. 그는 심방세동에 대한 전극도자절제술을 국내에 처음 도입했고, 폐정맥에서 발발한 심방세동에 대한 전극도자절제술을 주도했다. 전극도자절제술(Radiofrequency catheter ablation)은 사타구니 혈관을 통해 3~5개의 전극도자(전기를 전달하는 얇은 관)를 심장까지 보내 부정맥 발생 부위의 조직을 파괴함으로써 부정맥 증상을 제거하는 시술 방법이다.

김 교수는 의료계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아 고려대 안암병원장(2014~2015년), 고려대 의료원장(2019~2023년), 대한부정맥학회 회장(2017~2018년) 등을 거쳤다. 미국심장학회 정회원, 세계부정맥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아시아태평양 부정맥학회 회장(2014~2015년)을 역임하는 등 세계 부정맥 학계에서도 명성이 높다.

 

“부정맥은 심장에 전기 누전이 발생한 상태”

우리의 심장은 전기 힘으로 박동한다. 우심방 위에 위치한 동방결절에서 생성된 전기는 방실결절을 거쳐 심방과 심실 근육을 일정한 간격으로 수축하게 해 폐와 전신에 혈액이 공급된다. 이 전기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하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거나(빈맥), 너무 느리게 뛰거나(서맥), 바르르 떨리는(세동) 비정상적인 상태가 발생한다. 이를 부정맥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심장은 전기제품처럼 전기가 흐르는 회로가 있다”며 “마치 누전이 되듯 엉뚱한 회로로 전기가 흐르거나 엉뚱한 곳에서 전기 스파크가 발생하는 증상이 부정맥이다”라고 쉽게 설명했다. 이어서 “심장에서 전기를 생성하는 동방결절에 문제가 있어도 부정맥이 생길 수 있다”며 “이는 중앙방송이 시원치 않으면 지방방송이 활개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고 말했다.

부정맥 중 빈맥이 가장 위험하다. 특히 심실빈맥은 부정맥으로 인한 사망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치명적이며 돌연사의 주범이기도 하다. 빈맥은 심장이 분당 100회 이상 뛰는 상태를 말하며 심하면 200회 이상 뛰기도 한다. 심방세동은 심장 근육이 바르르 떨리는 증상으로, 심장의 혈전을 떨어뜨려 뇌로 보내 뇌경색을 유발할 수 있다. 빈맥과 세동은 항부정맥제를 쓰거나 전극도자절제술로 이상 회로를 차단해 치료한다. 서맥은 맥박이 분당 60 이하일 경우를 말하며, 증상이 심하면 임공심장박동기를 삽입해 치료한다.

김 교수는 빈맥과 심방세동, 심실세동 등 생명을 크게 위협하는 부정맥 치료를 많이 해왔다. 특히 선진국의 최신 치료 기법을 앞서 받아들여 국내 부정맥 치료 발전을 주도했다.

“그렇게 위험한 수술을 겁 없이 하다니…”

김 교수는 1996년부터 2년간 심장병 연구 메카인 미국 시더스사이나이(Cedars-Sinai) 메디컬센터에서 연수를 했다. 연수를 떠날 때 그의 각오는 남달랐던 것 같다. 김 교수의 회고다.

“국내에서 새벽 2~3시까지 실험을 해 연구 결과를 냈지만 해외 학계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여러 번 좌절했다. 이때 결심했다. K리그를 벗어나 메이저리그에서 도전해보자고. 연구 주제는 심실세동과 심실빈맥이었다.”

연구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연수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어 심실세동을 유발하는 루트를 발견했고, 이 루트를 예측하는 방법을 입증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로 그는 1997년 미국심장학회가 수여하는 ‘젊은연구자상’을 수상했다.

김 교수는 연수 중 심방세동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성과를 거뒀다. 당시 심방세동은 여러 개의 회로에 동시다발적으로 전기가 흘러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폐정맥의 특정 부위가 원인인 심방세동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1998년 2월 귀국 후 국내에서 폐정맥 요인으로 인한 심방세동 환자들을 만났고, 그해 5월 전극도자절제술을 최초로 시도해 성공했다. 같은 해 9월에는 비슷한 해외 연구 결과가 의학저널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발표되어 김 교수는 힘을 얻었다.

국내 심방세동 치료의 새 장을 연 전극도자절제술은 이렇게 시작되었지만 당시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시술 결과를 국내 학회에 보고했더니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하나’라는 야단을 많이 맞았다. 당시 심방세동은 약물이나 심장박동기 시술로만 치료했기 때문이었다.”

김 교수가 도입한 심방세동 전극도자절제술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표준 치료로 자리 잡았다. 김 교수의 첫 시술 환자였던 고려대 안암병원 인턴은 현재 같은 병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부정맥의 하나인 심방세동 발생 원리. 동방결절에서 생성된 전기가 그림 속 화살표처럼 정상 회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심장 근육을 수축해 전신에 혈액이 공급된다.(왼쪽 그림) 그러나 전기회로에 문제가 생기면 엉뚱한 곳에서 스파크가 터져 심장 근육이 바르르 떨리는 심방세동이 나타난다.(오른쪽 그림) photo 게티이미지
 

부정맥 완치율 90%, 시행착오도 겪어

김 교수에 따르면 심방세동을 일으키는 불규칙한 근육은 심장 바깥쪽(외막)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심방세동이 오래될수록 외막이 더 거칠기 때문에 내막만 전극도자절제 시술을 하면 재발이 많다. 김 교수는 ‘외막과 내막을 동시에 시술하면 효과가 더 크다’라는 임상 결과를 세계 최초로 학계에 보고해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극찬을 들었다.

김 교수는 심장 판막과 연결된 심장 근육 중 유두 모양의 유두근이 부정맥의 주요 원인임을 밝혀냈다. 이 밖에 심장에서 혈전이 잘 쌓이는 귀 모양의 ‘좌심방 이(耳)’가 격리되면 적극적인 항응고 요법이나 ‘좌심방 이’ 폐쇄 시술 또는 수술을 해야 뇌졸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등 굵직한 연구 결과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국내외 의료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 교수 집계에 따르면 김 교수가 주도한 부정맥 시술은 평균 90%의 완치율을 보였다. 이처럼 우수한 치료 성과를 내기까지는 엄청난 노력과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한두 번 시술을 해서 안 되면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이 없어질 때까지 끝까지 했다. 시술 후 유발 검사까지 해서 부정맥이 발견되면 또 없앴다. 나와 같이 시술했던 후배 교수들은 아마 혼이 다 나갔을 것이다.”

초기엔 시행착오도 있었다. 10여 시간이나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실패한 환자도 있었다.

“2002년 일이다. 17시간이나 ‘여기다, 여기다’ 하며 시술을 반복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우리가 헛것을 본 것이었다. 이런 실패가 쌓여 완치율을 조금씩 높였고 지금은 실패를 거의 하지 않는다.”

 

아시아 최초로 3차원 매핑 장비 도입

완치율 향상을 위해 최신 장비를 신속히 도입했다. 특히 3차원 매핑 시스템(입체 지도화 장비) 도입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3차원 매핑 시스템은 심장을 입체 모양으로 보여줘 정확한 진단과 시술을 가능하게 하는 의료 장비다. 2002년 김 교수의 노력으로 고려대 안암병원은 이 장비를 도입했다.

“당시 3차원 매핑 시스템은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에 한 대도 없었다. 병원은 10억원에 육박하는 장비를 사줄 여력이 없었다. 마침 부정맥과 뇌출혈로 고생하다가 우리 병원에서 완치된 환자 한 분이 사정 이야기를 듣고 선뜻 10억원을 기부했다. 그분은 건설회사 회장이었다.”

3차원 매핑 시스템 도입 후 일본, 중국,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의사들이 2주마다 단체로 와서 시술 장면을 참관했다. 이 덕분에 김 교수의 명성은 더 높아졌다. 김 교수는 “3차원 매핑 시스템은 이후 발전을 거듭해 부정맥의 진짜 신호와 가짜 신호까지 구별할 정도로 정교해져 부정맥 시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부정맥 치료는 AI(인공지능) 등의 첨단기술과 원격의료 덕분에 발전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심전도는 몇십 분에서 하루 또는 한 달간 심장 박동을 모니터링하고 결과 분석에 긴 시간이 소요되지만, AI는 일주일, 한 달, 일 년 내내 모니터링을 하고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분석해 최선의 치료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원격의료도 부정맥 분야가 선봉장이다. 장소나 시간에 상관없이 환자의 심장 박동 데이터를 수집해 의료진과 실시간 연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우리나라 부정맥 치료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뭔지 아느냐”고 기자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규제 아니냐”고 대답했더니 “규제 중에서도 원격의료 규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도 심전도를 체크할 수 있는 시대지만 원격의료를 못하게 묶어두니 의사가 모니터링을 할 수 없다”며 “부정맥 환자에 대한 원격진료 규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더 나아가 “각종 규제로 인해 부정맥 치료 신의료기술이 5~7년이나 늦게 들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치료술이 펄스필드절제술(Pulsed field ablation)이다. 펄스필드절제술은 심방세동을 일으키는 폐정맥 조직을, 전기 파동을 이용해 없애는 최신 기법으로 선진국에서는 임상에 활발히 적용해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해외 부정맥 학회에 가면 3분의2는 펄스필드절제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신의기술평가원, 식약처, 심평원의 평가 및 허가 과정에 3~5년의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펄스필드절제술은 전기충격을 2초 동안 5번 주면 시술이 끝난다. 전극도자절제술로 1시간 걸리는 시술을 10분이면 끝낸다.”

김 교수는 “신의료기술은 패스트트랙을 만들어 경험 많은 병원에서 먼저 테스트하고, 테스트 결과에 문제가 없으면 사용을 승인하는 방식으로 승인 소요기간을 지금보다 2~3년 이상 줄여줘야 한다”며 “그래야 세계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부정맥 치료 등 K의료가 계속 앞서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부정맥 인구 4년 새 23.8% 증가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은 국내 부정맥 인구는 2022년 45만9727명으로, 2018년 37만1445명에 비해 무려 23.8%나 증가했다. 김 교수는 환자 급증의 원인으로 노인인구 증가와 건강검진의 활성화, 젊은 인구의 생활습관 문제를 꼽았다. 그는 특히 40대 이하의 젊은 부정맥 환자의 증가 속도에 주목하고 있다.

젊은 부정맥 발병에는 유전 요인이 크다고 알려져 있지만 김 교수는 유전 요인에 더해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중요하게 본다. 김 교수에 따르면 “40세 미만 부정맥은 과음, 고혈압, 비만, 수면장애가 영향을 크게 준다”며 “이런 요인들은 우리가 노력하면 어느 정도 제거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부정맥 치료는 빨리 할수록 좋다. 김 교수는 “이전에는 적극적인 치료와 합병증만 막는 치료의 결과가 비슷하다고 생각해 많은 의사들이 치료를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았지만, 최근 대규모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부정맥 발병 1년 안에 치료하면 결과가 완전히 바뀐다”며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기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각자 스스로 맥박을 체크하면서 ‘자기 맥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마트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도 권장한다. 만약 평소와 맥이 다르면 휴식을 취하고 잠을 충분히 자는 등 예방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 자신도 해외 장기여행을 하거나 학회 발표 등을 앞두고 경미한 부정맥 조짐을 느낄 때가 있다며 이럴 경우 의식적으로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숙면과 긴장완화를 돕는 멜라토닌제를 섭취하기도 한다. 적절한 운동은 부정맥 예방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적극 권장한다. 그러나 익스트림 스포츠 등 격한 운동은 짧은 시간 안에 심장에 너무 많은 산화를 가져와 심실빈맥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특별한 활동 없이 가슴이 뛴다 △두근거린다 △맥이 좀 빠지는 것 같다 △가슴이 덜컹거린다 △숨이 차다 △어지럽다 등의 증상이 지속되면 병원을 찾아 부정맥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공황장애도 맥이 빨리 뛰고 쓰러질 것 같은 증상이 부정맥과 비슷하지만 공황장애의 15%는 심장 박동 이상이 동반되므로 부정맥 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국내 부정맥 치료를 이끌 다음 리더는?

김 교수는 지난해 3월 정년 퇴임을 했지만 명예교수로서 고려대 안암병원과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진료와 시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김 교수는 K의료의 해외 전파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월 1일부터 아시아태평양 부정맥학회 학회지 ‘저널 오브 아리스미아(Journal of Arrhythmia)’ 편집장을 맡았으며, 아시아 부정맥 의사들이 좋은 연구자, 좋은 임상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플랫폼으로 이 매체를 확장할 계획이다. 

또한 김 교수가 학회에 처음 제안했던 ‘컨트리 투 컨트리 매칭 프로젝트’(의료 선진국과 후진국을 1 대 1로 연결하는 사업)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아시아 국가들 간의 의료기술 차이를 줄이는 데 앞장서겠다는 계획이다.

김 교수에게 우리나라의 부정맥 분야를 이끌어갈 실력 있는 의사 5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교수는 주요 병원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이면서 뚜렷한 특장점을 가진 의사들을 골고루 선별했다.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박희남 교수는 AI와 가상현실을 이용한 치료법 연구와 개발에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오세일 교수는 서울대병원 인프라를 이용해 다른 의사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며 자기 색깔을 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남기병 교수는 특히 심실빈맥 치료에서 풍부한 경험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 심장내과 한성욱 교수는 장기간 미국 연수 경험을 바탕으로 부정맥의 기본과 비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다.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최종일 교수는 특히 유전성 부정맥 치료에 많은 경험과 실력을 갖추고 있다. 김 교수는 “의사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내가 천하통일 하겠다’는 마음보다 각 분야에서 자기 색깔을 가지고 10~20년 후에 뭔가 작품을 만들겠다고 준비하는 의사들이 한국 부정맥 의료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작성 :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 기사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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